본문 바로가기
제이크의 과학수업

실수에서 위대한 발명이 탄생한다.

by 빛나빈나 2022. 6. 16.
반응형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까지만 해도 유럽에서는 성경책 한 권의 값이 집 한 채 값과 맞먹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 필기사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손으로 일일이 베껴서 책 한권을 완성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책은 신부들이나 부자만이 가질 수 있었습니다. 좀 더 많은 책을 만들어 일반 사람들까지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때마침 시대의 분위기도 르네상스라는 큰 흐름이 있었고, 종교개혁이 한창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집에 두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었지요. 이러한 흐름 속에 필사가 아닌 판을 만들어 성경을 찍어내고자 하는 시도가 독일의 라인 강변에 위치한 마인츠 마을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이 마을의 금은세공사였던 구텐베르크라는 사람이 <가난한 자의 성서> 라는 40쪽짜리 책을 나무 목판에 새긴 다음 종이에 찍어 사람들에게 팔기 시작했습니다. 이 40쪽짜리 책이 나오는 데만도 서너 달의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 이후 구텐베르크는 더욱 욕심을 내어 성경책 한 권을 통째로 목판 인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성경책 한 권의 분량은 천 쪽이 훨씬 넘는 분량이었고, 이것을 전부 목판으로 새기는 데 삼십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그만큼 비용도 엄청나게 들 것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구텐베르크는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작업을 하던 어느 날 목판 하나가 거의 완성되어 갈 즈음에 구텐베르크는 글자를 하나씩 옮기다가 실수로 틀리게 글자를 새기고 말았습니다. 글자 하나 때문에 목판을 처음부터 다시 새겨야만 했습니다. 이때 상심해 있던 그에게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수십 개의 글자를 하나의 목판에 새기지 말고 글자 하나하나씩을 떼어서 조각한 다음 이것들을 조합해 책을 찍는다면 어떨까? 그럼 똑같은 글자를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새길 필요도 없잖아!'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나무로 된 활자는 책 몇권을 인쇄하고 나면 다 닳아서 더 이상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직업을 살려 금속으로 활자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럽에서 태동한 금속활자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이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덕분에 책을 대량으로 찍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금속활자로 만들어진 책은 유럽 전역으로 급속히 퍼져나갔고, 이로 인해 학문의 발전이나 사상의 전파가 활발해져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데 큰 역할을 했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구텐베르크는 시력을 잃게 되어 자신이 수십 년에 걸쳐 열정을 쏟아 부어 만든 금속활자로 인쇄된 성경을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세계 최초는 아니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에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200년이나 앞선 1377년, <직지심경> 이라는 책을 금속활자로 인쇄했답니다. 우리의 금속활자는 유럽의 금속활자처럼 당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구텐베르크의 활자를 더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인간에게 날개를 달다

하늘은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것은 고대의 신화나 설화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인류의 오랜 꿈이자 숙원이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도 다이달로스라는 발명가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가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로 하늘을 날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카로스는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서 밀랍이 녹아 바다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1500년경에는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발명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새처럼 날개를 퍼덕여서 날 수 있는 비행기를 설계했습니다. 하지만 1680년, 이탈리아의 수학자 조반니 보렐리는 인간의 근육은 너무 약해서 인간의 무게가 공중에 뜰 만큼 큰 날개를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답니다. 이러한 꿈을 최초로 실현한 것은 1783년 프랑스의 몽골피에 형제에 의해 발명된 뜨거운 공기를 이용하는 기구(balloon)였습니다. 그러나 기구는 마음먹은 대로 방향을 바꾸기가 힘들고 속도가 느린 점 등 한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19세기의 발명가와 과학자들은 공기보다 무거운 탈것을 이용해 하늘을 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상상의 수준을 넘어 '조종이 가능한 동력 비행기'를 실제로 만드는 데는 숱한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조지 케일리, 오토 릴리엔탈, 클레멘트 에이더, 새뮤얼 랭글리 등 많은 발명가들이 이에 도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이 중 몇몇은 비행 사고로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미국의 윌버 라이트(1867~1912)와 오빌 라이트(1871~1948) 형제였습니다. 독일의 발명가인 오토 릴리엔탈의 실험 기사를 읽고 비행에 관심을 갖게 된 이들은 1896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는데,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비핼기를 안정되게 조종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과 글라이더에 엔진을 달아 동력 비행기를 만드는 것 두가지 였습니다. 이들은 먼저 날개의 모양을 변형시켜 비행기의 방향을 바꾸는 방법을 발명하였고, 글라이더 실험을 통해 이를 개량하였습니다. 이어서 그들은 증기 기관 대신 내연 기관을 이용해 글라이더에 달 수 있는 12마력급의 발동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마침내 1903년 12월 17일, 노스캐롤라이나 주 키티 호크에서 사상 최초의 성공적인 동력 비행이 이루어졌습니다. 체공 시간이 불과 59초에 그쳤고 지켜봐 주는 사람도 거의 없는 실험이었지만, 라이트 형제의 비행은 이후 상공 시대를 여는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라이트 형제의 발명은 곧 유럽으로 전해져 큰 주목을 끌었답니다. 특히 1909년 프랑스의 루이 블레리오가 자신이 직접 만든 비행기로 영국해협 횡단을 성공한 것이 계기가 되어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자, 곧이어 승객과 화물을 실어 나르는 상용 비행기가 생겨났습니다. 이로써 본격적인 항공 시대가 열리고 이제 인간은 멀리 우주로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반응형

댓글